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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전산쟁이가 될 운명

latentis 2017. 7. 16. 11:16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심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서야 PC를 갖게 되었으니 뭐 그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컴퓨터와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히 선배들에게 리눅스에 대해 듣게 되면서 부터다.

내가 처음으로 리눅스를 컴퓨터에 설치했던 시절에는 도스만 있었다. 아직 윈도우즈95도 나오지 않은 상태였다. 아! 윈도우즈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환경이 있기는했다. 윈도우즈 3.1이라고...

Windows 3.11 workspace.png

*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Windows_3.1x

윈도우즈 3.1을 쓰는 사람이 아마도 있었겠지만 내 경우에는 윈도우즈 3.1을 쓸 일이 없었다.

내가 최초로 설치한 리눅스 배포판은 슬랙웨어[각주:1]였다. 당시 내 컴퓨터에는 CD롬 드라이브가 없었다. 결국 학교 전산실에서 플로피 디스크에 슬랙웨어를 다운 받아 집 컴퓨터에 설치했다. 플로피 디스크로 40장 정도 분량이었다.[각주:2] 당시에 내가 설치한 배포판의 리눅스 커널은 버젼 0.99쯤[각주:3]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오래전 일이지만 리눅스에는 이미 X 윈도우 시스템이 포팅되어 있었다. 그리고 당시 흔히 쓰이던 윈도우 매니져는 FVWM이었는데 그 모습 역시 윈도우즈 3.1보다는 훨씬 예뻤다. FVWM 역시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 이미지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FVWM

그렇게 리눅스를 설치한 뒤 여기저기서 문서를 구해 읽었다. 그 중에는 내가 결국 프로그래머가 되도록 한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는 문서가 있었다. 그 문서는 FSF와 GNU 프로젝트의 창시자 리처드 스톨먼[각주:4] 작성한 문서들 중 하나였는데 "What is Free Software?"인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글에는 다음과 같은 자유소프트웨어 사용자의 권리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 The freedom to run the program as you wish, for any purpose (freedom 0).
  • The freedom to study how the program works, and change it so it does your computing as you wish (freedom 1). Access to the source code is a precondition for this.
  • The freedom to redistribute copies so you can help your neighbor (freedom 2).
  • The freedom to distribute copies of your modified versions to others (freedom 3). By doing this you can give the whole community a chance to benefit from your changes. Access to the source code is a precondition for this.

자유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 필요하면 수정해서 다른 사람과 나눌 권리... 그 철학에 감명을 받았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것이 간지난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살면서 언뜻언뜻 자유 소프트웨어와 관련된 회사에 다니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리고 게으른 탓에 자유 소프트웨어 개발에 참여하지도 못했다.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이제는 전만큼 자유 소프트웨어에 열정적이지 않다. 그리고 더이상 리눅스교 신도도 아니다.

쓰다보니 넋두리가 되어 버렸군...

  1. 슬랙웨어는 레드헷과 데비안 계열 배포판이 대세가 된 지금도 여전히 존재한다. 2016년 7월에 버젼 14.2가 출시됐다. [본문으로]
  2. 윈도우즈 3.1에 플로피 디스크라니 뭔가 연식 인증하는 것 같아서 찝찝하지만 어쨌든 리눅스 설치는 고통스러웠다. [본문으로]
  3. 현재 리눅스 커널의 최신버젼은 4.12.2다. [본문으로]
  4. 리처드 스톨먼은 여러모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그는 Emacs, gcc, glibc, gdb와 여러 다른 자유소프트웨어의 최초 저자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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